Archive, 교육

학부모는 자녀의 학습 상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모는 자녀의 많은 것을 압니다. 자녀가 중학생 정도 되면 벌써 십 몇 년을 보아왔기에 많은 행동에 대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사춘기 때 변화는 못 따라가더라도 상당히 많은 성향과 성격에 대해서는 부모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부모는 자녀의 학습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학부모가 수학 교사나 교수라 하더라도 자녀의 수학 학습 상태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학생의 학습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1) 교육학적으로 구체적인 상황 판단 및 원인 분석이 가능해야 하고, 2) 그 판단 기준에 의거하여 해당 학생의 상태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학부모는 두 가지 조건 모두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가진 데이타는 ‘시험 점수’라는 실질적 판단이 불가능한 기준뿐이고, 적극적인 학부모의 경우 2)의 데이타를 접근할 수 있어도 1)의 상황 및 원인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사실 1)의 경우, 교육자들조차 경험이나 계속된 연구와 훈련 부족 등의 이유로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학부모들 스스로가 자녀의 학습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알맞는 조취를 취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대치동 엄마들은 아이들을 아무 학원에나 보내는 게 아니라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고 그걸 보충해줄 수 있는 곳에 보낸다”며 “무작정 학원 찾아가 ‘잘 부탁한다’는 엄마를 보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가 학업적인 면에서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승부를 걸 수 없는 곳이 대치동”이라며 “어중간한 시기에 와서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덧붙였다.

“어떤 수준의 애라도 여기서는 딱 맞는 레벨의 수업을 하는 학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어떤 위기를 가져오는지 바둑 교육의 예를 잠시 보기로 합니다.

이세돌 9단의 전언에 따르면 현재 세계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국 바둑계가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바둑도장들이 창의력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바둑의 무한한 세계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다면(심지어 서봉수, 유창혁 같은 독학 고수들까지 있었다), 지금은 정석과 묘수풀이 등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런 교육으로는 결국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바둑 도장들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이세돌 9단은 두 가지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바둑 도장들이 ‘장사’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학부모들이 사범들을 믿지 못하고 닦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깊게 따져보면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도장들이 장사에 매달리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으며, 장사를 잘 하려면 학비를 지불하는 학부모들의 요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학부모의 요구로 집중된다. … 그들 생각에 그들의 자녀는 빨리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 정상이다. … 그들의 자녀는 당연히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과정보다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건 사범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범들은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과정보다 더 빨리 문하생들이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승부의 묘수, 비기를 가르쳐서 대회에 나가 이기고, 되도록 어린 나이에 입단하고 승단해서 신동 느낌을 계속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세돌 9단의 뼈아픈 지적처럼 “꿈나무들이 창의력이나 가능성 등을 살리지 못하고 도장의 스승들만 닮아 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바둑을 수학으로, 도장을 학원으로, 사범을 강사로, 대회를 시험으로만 바꾸면 수학 교육의 현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겠습니다.

요즘에는 학부모 스스로 “자녀가 시험을 어떻게 치고 오든 상관하지 않겠다. 수학을 싫어하지 않도록만 가르쳐달라”고 주문해도 알아서 성적을 위해 수업 진행을 하는 학원이 대다수입니다. 시험 성적에 의해 학원의 존립 유무가 결정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학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자녀의 학습 상태가 아니라, 학생을 가르칠 교육관입니다. 교육관이 제대로 서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 기관을 찾을 수 없고, 교육 기관을 믿지 못하면 학부모는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녀의 학습 상태를 판단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게되면 위의 기사에서 학부모들이 도장과 사범의 능력을 판단했다고 착각하고 도장의 잘못된 마케팅에 속은 것처럼, 학부모 스스로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학원의 마케팅을 믿고 학원에 맡기는 셈이 됩니다.

선진국일 수록 소비자들은 음식이나 의약품을 사더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회사의 제품은 꺼립니다. 상품의 질과 회사의 윤리성이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상식적으로 봤을 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상품에 독성이 들어가더라도 잘 팔리거나 표면적인 효용성이 높아서 마케팅에 좋을  때에는 그 독성을 제거하기는 커녕 활용할 것임을 소비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학부모가 건강한 교육관을 갖고 있지 않으면, 건강한 교육관을 고수하는 교육기관을 찾지 않으면, 교육 시장에는 마케팅만 남게 됩니다.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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