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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에 대한 오해] 4. 암기하고 나면 이해가 된다?

이 글은 [수학 공부에 대한 오해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수학 공부를 하다보면 무슨 공식이 그렇게 많은지, 이해도 안되는 것을 외우려니 죽겠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일단 외워.”라고 하지요.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수학은 암기 과목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그 주장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왜 비효율적이며 더 나아가서는 바람직한(혹은 효율적인) 공부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는 어떤 정보를 꺼내올 때, 그 정보가 저장된 주소로 가서 가져옵니다. 반면에 인간의 두뇌는 각 정보가 저장된 주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와 연결된 다른 정보를 통해서 원하는 정보를 가져옵니다. 즉, 인간이 갖고 있는 정보란 다른 지식과 연계되어야 의미를 갖게 되고, 의미가 있어야 쓸모있는 지식이 됩니다. 그런데 암기란 개별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하나씩 쑤셔 넣으려는 노력입니다. 인간이 갖고 태어난 뛰어난 장치의 사용법에 역행하는 행위지요.

물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다른 정보와 연결을 시킵니다만, 한번에 연결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사용할 때마다 연결고리가 두꺼워진다거나 더 많은 정보와 연결된다든가 변화를 일으킵니다. 인간의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쓸모있고 중요한 정보들과 가능하면 많이 연결을 시켜야겠지요.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하는 것은 이미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생각하게 될 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면 아이들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 때는 모든 것을 알려줬을 때가 아니라 아이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규칙을 보여줬을 때입니다. 답이 쉽게 드러나는 경우,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인거죠. (1)

암기의 영향

 

다시 수학 공부로 돌아와 보면, 공식처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그 원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궁금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공식을 암기해버리면, 원리를 깨우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정보들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생성하는 기회를 놓치게 되며, 연결이 안되는 정보들만을 갖고 있게 됩니다. 이러한 별개의 정보는 자주 잊게 되어 계속 반복 학습을 해야만 하고, 있는 정보마저도 복합적이거나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면 응용이 되지 않아서 매번 새로운 유형을 외워야 합니다. 거대한 악순환의 시작인 것이지요.

학생들이 공식을 배우면서 어떻게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중학교 때 배우는 ‘근의 공식’이 있지요. 아마도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치고 이 용어를 기억 못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이 공식은 이차방정식의 근을 찾는 것인데, 많은 학생들은 이 공식이 어떻게 유도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짝수 근의 공식은 잘 기억하지요. 근의 공식은 이차방정식에서 완전제곱식을 만든 결과를 일반화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 결과물인 근의 공식은 두 가지로 외우고 있으면서도 완전제곱식을 이용한 문제를 만나면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인양 반응합니다.

조금 더 저학년으로 내려가면 ‘이항’이라는 기술을 봅니다. 이게 참 웃기는 용어인 것이, 실제 사용되는 원리와는 상관없고 그 결과의 모양새만을 알려주므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오해를 하도록 만듭니다. 이항의 원리는 등식의 성질로써 같은 숫자를 더하거나 곱해도 등식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팔저울 한 쪽에 돌멩이와 연필 하나가, 다른 한 쪽에 지우게 세 개와 연필 하나가 있으면서 평행을 유지하면, 양쪽 팔에서 연필 하나씩을 빼도 양팔 저울은 평행을 유지합니다. 항을 옮기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지요. 문제는 이것을 배울 때, ‘이항: 항을 등호의 다른 쪽으로 옮기는 기술’만을 가르치지, 왜 그게 가능하고 그것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도록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덧셈에 대한 역원을 먼저 찾을지 아니면 곱셈에 대한 역원을 먼저 찾을지를 헷갈리고, 항등원을 만드는 것이 아닌 없어진다로 설명하기에 0이 되어야 할지 1이 되어야 할지 헷갈립니다. 물론 어린 학생들에게 항등원과 역원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항’이라는 마술 대신 등식의 성질이라는 지극히 논리적인 설명을 하면 학생들이 항등원과 역원을 모른다해도 위와 같이 헷갈려하지 않습니다.

고등수학의 도형의 방정식이나 부등식을 어렵게 여기는 학생들이 많은데, 공식을 주로 기억한 학생들의 경우, 각 공식이 머릿속에 개별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개념들과의 연결 관계와 그에 따른 의미를 모릅니다. 따라서 종합적인 문제들이 요구하는 여러 다른 개념을 그래프와 식 사이에서 연결하는 방식의 접근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수학에서 지식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렇다면 수학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내용을 배우면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그 이전에 배웠던 원리 중에 이 내용과 연결되는 것들을 생각해보고 또 다른 확장 가능성에 대한 추측까지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 갖고 있는 지식, 개념, 경험으로부터 얻은 정보들과 의미있는 연결고리가 많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닥 간단하지도 않으며 체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과정입니다. 어떤 하나의 새로운 정보가 두뇌에 안착을 하는 과정에서는 예전의 구조가 마치 구조조정이라도 하듯 변화를 겪게 됩니다.

수학 공부를 잘하고 오래한 사람들은 이러한 작업에 대한 노하우가 상당하고, 이게 바로 수학 실력의 차이를 만듭니다. 수학 실력이 좋아보이는 학생이 이용하는 ‘교재’라든가 ‘오답노트’라든가 하는 것들을 다 따라해도 수학 실력이 안늘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작업의 기술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같은 고성능 카메라를 산다고 비슷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갖는 것입니다.

2012.11.06

뱀발: 이 글은 암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암기가 먼저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먼저 외워서 하다 보면 이해되더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부분은 이해된 것으로 착각할 뿐, 실제로 이해하진 못합니다.

(1) 생각에 관한 생각 by 대니엘 카너먼

토론

[수학 공부에 대한 오해] 4. 암기하고 나면 이해가 된다?”에 대한 4개의 생각

  1. 수험 공부 하다 들렀는데 너무 좋은 글 잘 읽습니다.
    한국식 특유의 공부 방법이 사방에 천지라 내 목소리를 듣고 나의 공부 방법으로 수험 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가끔 많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독학으로 수험 생활을 하고 있는데 수학 공부를 하면서 내 생각이 정말 맞을까? 라는 질문을 많이 하면서 또 나의 상식이라는 틀을 넓히려는 와중에 이렇게 좋은 글로 저의 눈을 말끔하게 탁 트이게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수학이 실생활에 별로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공부했던 지라 한국 수학 공부가 많이 어려워 수학 자체를 많이 싫어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하나하나 곱씹어가며 천천히 음미하며 공부하니 이렇게 깊은 학문이 또 있나 싶고, 실생활에 정말 많은 방향으로 우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학문이 또 있을까 하며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깊이에 놀라고 감격합니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공부 자체에 의문이 들거나, 어떤 길로 가야할까 방황할 때 자주 찾아 볼게요.

    이 블로그가 저 같이 험난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등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용기를 얻고 갑니다. 감사해요~~

    게시자: Inho Kang | 2014/01/07, 6:48 오후
    • 제 글이 공부를 함에 있어 용기를 얻으시는데 일조하였다니 다행입니다. 수학이 주는 즐거움, 이치를 깨달아가는 즐거움을 가능한 많이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실은 이것이 수학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봅니다.)

      게시자: mentoR | 2014/01/08, 4:08 오전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시자: 익명 | 2015/01/21, 10:41 오후
  3.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연히 발견하고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인지과학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수학에 대한 지식을 정말 멋지게 연결 지으셨네요. 감탄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글 기대하겠습니다. RSS등록했습니다^^

    게시자: 익명 | 2015/03/13, 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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