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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과 공식 암기의 폐해 사례들

수학교육자들 중에서 선행을 무척 반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그 이유는 ‘선행’이란 것 자체가 나쁜 것이라서가 아닙니다. 요즘은 무턱대고 ‘선행은 나쁜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생겼는데, 학생 개개인을 놓고 보면 선행이란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어차피 선행이란 다수를 위한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나 있는 것인데, 그런 기준에 벗어난다고 나쁠리가 있나요.

선행을 반대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선행이란 흔히 말하는 ‘진도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도빼기란 무엇일까요?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강의의 내용을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해진 기간 내에 특정 진도를 나가는 것을 목표로 수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빠르게 진도를 나가다보니 그 원리를 파헤쳐볼 시간은 없고, 결국 학생 머릿속에 남는 것은 껍데기뿐인 공식이나 이론 나부랭이들입니다.

여기서 수업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강사가 제대로 수업을 안하고 학생한테 신경을 안쓰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판입니다. 수업 목표가 ‘정해진 기간 내에 특정 진도를 나가는 것’인데 강사가 아무리 명강의를 하고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는지 신경을 쓴다고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제대로된 학습을 위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수업 목표가 달라야하며 몇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하기로 하지요.

다시 돌아가서, 선행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와같이 제대로 된 학습을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선행을 안해도 원리를 이해하는 학습을 하지 않으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기겠지요. 그러면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습이란 무엇일까요?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여러번 했지만 상당히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이 아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유형 문제집’을 보면 각 단원마다 나올 수 있는 문제를 각 문제에 쓰이는 원리와 그 해결방식에 따라 유형별로 나누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각 유형마다 풀이를 써놓고, 그 풀이를 거의 그대로 쓸 수 있는 문제를 그 아래에 배열해두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각 유형과 그 예제 풀이를 보고 그대로 외워서 그 유형에 쓰도록 유도하는, 문제 유형 외우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원리를 이해할 필요성을 배제시키고 유형을 보고 알아챌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방식이 무엇이 문제일까요? 학생이 생각할 여지를 가능한 줄여주고 단순암기를 장려하여, 학생의 사고력을 줄이고 분석능력을 퇴화시킨다는 얘기는 그저 추상적으로만 들리지요. 그래서 이번엔 학생들에게서 보았던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분배법칙과 전개공식

 

a(b+c)=ab + bc

범이(가명)는 수학1 과정의 다항식의 연산을 공부하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저 아직 전개공식을 안배워서 이 문제 못 풀겠어요.”

다음 식을 전개하시오.

(x-2)(x+2y-1)(2x+y+1)

“범이야, 분배법칙을 배우지 않았니?”

“분배법칙이요? 분배법칙으로 이것을 어떻게 풀지요?”

이 학생에게는 분배법칙이 어떤 원리를 함축하고 있는 규칙이 아닌, 공식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분배법칙이라고 배운 규칙은 숫자가 괄호 밖에 하나 곱해져있고, 괄호 안에는 숫자 두 개가 더해져 있어야만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두 자리수 덧셈을 배운 학생이 세 자리수가 들어가자 더이상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공식처럼 외외버린 학생들은 계속해서 확장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원리가 아닌 모양을 보고 맞추는 방식으로 익혔기 때문에 다른 모양으로 식이 주어지면 결국 같은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공배수/최대공약수와 다항식의 약수와 배수

 

윤이도 수1의 다항식의 약수와 배수 단원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여기 두 식에서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를 어떻게 찾나요?”

A=x^2 + 3x +2, B=x^3 + x^2 -x -1

“윤이야, 두 자연수의 최대공약수를 어떻게 찾지?”

윤: “두 자연수를 같이 이렇게 나눠서 …어쩌구 저쩌구… ”

“왜 그렇게 하지?”

윤: “…”

대화를 좀 더 나눠본 결과, 이 학생은 두 자연수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방법’은 알지만 그 방법이 어떤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습니다. 찾는 방법만 알기 때문에 다항식의 인수와 약수, 배수에 대해 배웠음에도, 자연수에서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원리가 숫자가 아닌 다항식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고, 열심히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를 배웠었으나 윗 과정에선 아무 쓸모없는 지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학년 학생들에게 숫자의 성질을 탐구하도록 수학 과정이 짜여져있는 이유는 윗 학년에서 문자를 다룰 때 같은 원리를 이용한 성질들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학생에게는 그러한 저학년 과정이 쓸모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자보다 이해하기 쉬운 수라는 도구가 없음으로써 저학년 과정을 제대로 이해한 학생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방법으로 문자로 된 식을 접근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공부 방식이 된 것이지요.

 

진법과 다항식의 나눗셈

 

찬이는 다항식의 나눗셈을 배우고 있는 학생입니다.

“선생님, 여기서  d는 찾겠는데, 나머지 a, b, c는 어떻게 구하나요?”

f(x)= a(x-2)^3 + b(x-2)^2 + c(x-2) + d

f(x)= 2x^3 -3x^2 +x -10

d는 어떻게 구했어?”

찬: “식에 2를 대입했죠.”

이 학생도 역시나 어떤 문제가 나오면 어디에 무엇을 대입하면 답이 나온다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이론의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항식을 나눗셈 식으로 표현할 때의 원리를 숫자에 사용하는 것은 중학교 1학년(더 내려가면 초등학교) 과정의 진법입니다. 예를 들어 숫자 562는 10개들이 10개짜리 큰 묶음 5개와 그 나머지(10개들이 작은 묶음 6개와 나머지(낱개 2개))인데, 이러한 나머지를 구하는 과정은 10진수를 2진수로 고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위의 문제는 그러한 과정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지요. 진법을 잘 이해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지만, 진법을 변환화는 방법과 공식만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비약이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리를 아는 건 좋지만 굳이 필요없는 것까지 알려고 부족한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지 않느냐?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라고 하지만, 원리를 모르고 당장의 내신 성적내기에 급급해서 했던 공부들이 실은 가장 비효율적인 공부란 것을 모릅니다.

수학은 몇 가지 원리만 갖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과목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나중에 나오는 정리나 성질은 이전의 규칙과 원리에서 논리적으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원리가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굳이 모든 성질과 정리를 외울 필요 없는 효율적인 공부가 가능하기도 하고, 또 거꾸로 말하자면 근간이 되는 원리를 모르면 공식이나 결과를 모두 하나 하나 외우는 무지막지한 공부를 하고서도 늘 같은 원리를 사용함에도 전혀 새로운 유형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는 괴물 같은 과목이 수학입니다.

토론

유형과 공식 암기의 폐해 사례들”에 대한 2개의 생각

  1. 매번 좋은글을 읽네요 수학에 관심이 많아 블로그에 자주 들어와 글을 읽습니다. 좋은글 보고 갑니다.

    게시자: 익명 | 2014/02/03, 4: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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