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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공부에 대한 몇가지 조언

초딩 때는 계산이 중요하다, 오답노트는 꼭 시켜야 한다, 정답률이 이렇게 나와야 한다,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각각은 일리 있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저런 이야기가 돌고 돌다보면 핵심을 잃은 채 껍데기만 회자된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잃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제가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느낀 것을 적어봤습니다.

 

잠을 푹 자라

 

간혹가다 학생이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생각할 때, 잠을 안재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잠의 부족은 학습 효율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잠을 충분히 자면 같은 내용도 훨씬 흡수가 잘되는 반면, 잠이 부족하면 공부를 해도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청소년기 때는 수면과 관련된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3~4시간 가량 늦게 분비되고, 성인과는 달리 새벽을 지나도 계속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등교시간은 이른 오전이지요. 가능한 잠을 일찍 자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어떻게든 보충을 해줘야 한다는 얘깁니다.

 

계산 연습은 연산법칙 연습이어야 한다

 

중학생들 중에서는 많고, 심지어는 고등학생임에도 계산을 노가다로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수학의 법칙은 안배우고 덧셈 뺄셈 구구단만 한 학생들이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나씩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인간 계산기인 셈이죠.

얼마 전에 중학교 수학은 잘한다는 애들 산수시키면서 저도 같이 산수했다가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구구단도 다 못외우기 때문에 단순 계산이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서도 느린 편입니다. 그런데 머리 팽팽 돌아가는 중학생들이 저보다 산수가 느리더라는거죠. 보나마나 수식 표현 그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나씩 계산했다는 얘기죠. 관련된 연산법칙을 총동원해서 가능한 숫자를 쉽게 만들어서 계산하는 사람보다 느릴 수 밖에요.

수학에서의 연산 법칙을 쓸데없는 ‘수학자들의 허영’ 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오해입니다. 계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서도 빛을 발하는 것이 연산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7+8-4+7

위의 계산을 7+8을 하고 그것에서 4를 빼고 다시 7을 더하는 건 순수 노가다입니다. 그러려면 수학을 배울 이유가 없죠. 위의 식을 연산 법칙을 이용해서 (7+7)+(8-4)로 해서 14+4를 하든가, (7-1)+(8-2)+(7-1)을 계산하든가, (7-2)+(7-2)+8을 계산하든가… 이러한 연산에 대한 이해는 자릿수, 분배법칙과 지수와 곱셈공식, 인수분해를 배우면서 더욱 더 확장되어야 합니다.

18^2 - 17^2

문제를 풀다가 위와 같은 계산이 나와서 학생들 시켜보면 자신이 계산기인양 제곱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위의 식은 18+17입니다. 제곱을 하는 학생과 덧셈을 하는 학생의 시간과 오답률의 차이는 실험해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려면 구구단 외우는 것보다 연산 법칙 활용 훈련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될겁니다.

 

답 맞추기에 열중하지 말라

 

학습에 있어서 모든 문제의 일차적인 목표는 개념 학습을 보조하는 것입니다. 수학 공부에서 문제를 푸는 행위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 자체보다 그 문제와 연결된 원리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확인하면서 그 원리들을 재차 학습하거나 기존에 잘못 이해한 부분을 찾아내어 지식체계의 오류를 솎아내는 역할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학습자의 추상 학습에 대한 경험이 짧을 수록 이러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며, 이러한 목적에 부합한 활동을 어려워 하거나 아예 그 방법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학습자가 잘 알지만 문제의 원리와는 상관없는 방법을 씁니다. 특히 주변의 성인이 “답을 몇 개나 맞추었는가?”에 관심이 높다고 느끼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학부모는 대개 이런 영향의 심각성을 모르다가 한참 후에 알게 되며, 이때 상당수의 학부모는 아이가 자신을 속였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아이는 속인 적이 없습니다. 부모나 선생(자신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어른들)의 요구 사항에 부응했을 뿐이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학 문제의 답을 맞추거나 틀리거나는 학습자의 실력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며, 입시를 3개월 앞둔 수험생과 달리 대부분의 학습자에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대하는 과정에서 학습하게 되는 원리와 개념입니다.

 

많은 문제를 풀라고 강요하지 마라

 

학생이 답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문제를 통해 개념 학습을 하고 있는지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일정 기간마다 평균적으로 푸는 문제 수를 보면 일차적인 판별이 됩니다. 문제를 통해 개념 학습을 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문제를 소화할 수 없으며, 문제를 통해 원리를 익히는 경우, 문제집의 수많은 문제들이 중복된다고 느껴져서 많은 문제를 푸는 것 자체가 굉장히 지루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제를 적게 푼다고 문제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은 수학 실력 향상에 좋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를 많이 풀어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시험 기술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 일이주 전에 벼락치기하듯 문제를 풀어대는 것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수학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시험 기술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오답 노트에 목숨 걸지 말라

 

언제부턴가 오답 노트가 유행하면서 마치 오답 노트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회자되는데, 핵심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수학 문제 몇 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 자체는 학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풀었던 문제들을 통해 어떤 핵심 원리를 배우고 지식체계의 오류를 찾아서 고쳤느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오답 노트는 풀이 노트에 불과합니다. 그런 노트는 고3 수험생처럼 이미 기반 공부가 다 끝나고 시험 기술 익히기에 돌입한 경우에나 유용합니다.

 

문제집의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라

 

문제집을 잘 선정해서 문제집의 갯수를 가능한 적게 푸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문제집도 모든 문제가 다 풀릴 가치가 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문제집은 일종의 구색 맞추기를 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오류가 있는 문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랜 기간 살아남아 학부모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모 고등학교 서적에도 해당합니다.) 종종 문제집의 가치는 포함된 문제를 전부 풀어야 생긴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럴 시간에 가치있는 문제들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이 학습자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식 쓰는 연습은 중요하다

 

수학이 추상화될수록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은 이것을 매우 매우 귀찮아하지요. 손 글씨 쓰는 것도 귀찮은데, 숫자랑 기호를 단계별로 쓰라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글이나 그림 또는 아이디어를 식으로 바꾸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습관은 아이디어와 식 사이에서의 움직임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듭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식을 쓰게 하고, 어떤 부분에선 쓰지 않도록 할까요?

학생이 식 쓰는 것을 싫어할 경우, 식으로 표현하는 첫 과정과 현재 배우는 단계에 있는 개념을 사용하여 식을 변형하는 과정만 식을 쓰도록 해도 충분합니다. 이것만 시켜도 잘 못하는 경우는 태반입니다. 안써도 된다는 중간 계산 과정은 잘 쓰면서 말이죠.

 

풀이 노트는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풀이 노트란 대부분의 학생들이 쓰는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노트가 아닙니다. 오답노트 항목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단순한 문제 해결 과정의 나열은 식 쓰는 연습을 제외하고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수학 문제의 목적에 맞도록 공부를 한다면, 노트가 필요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러한 노트는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단, 이런 노트는 약간의 구조가 있는 연습장 정도로 생각해야지, 깔끔한 프리젠테이션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그림을 그려라

 

인간에게 시각적 효과는 대단합니다. 머릿속에 상상이라도 하면 좋지만, 대부분 상상 안합니다. 더군다나 그림이 복잡해지면 상상만으로는 놓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선택과 집중을 좋아하는 게으른 녀석이니까요.

그림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그림을 안그리는 것은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젓가락질 안하겠다는 투정과 별 다를바가 없습니다. 젓가락질이야 다른 사람 보기에 이상할 뿐, 못먹을 것은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림을 활용할 줄 모르는 것은 고등학교 수학에선 굉장한 핸디캡이니 별 다를바가 없는 건 아니겠네요.

그러니 그리세요. 수직선도 그리고 도형도 그리고 수형도도 그리고… 그림하고 대화를 나누세요. 수학이 편해집니다.

 

그림은 간단하게, 다양하게 그려라

 

함수를 그리라고 하면, 갑자기 x축 y축을 그립니다. 아니, 좌표평면이 아니라, 함수가 궁금하다고. 그러고 나선 “더이상 못그리겠어요.”라고 합니다. 당연히 못그리겠죠. 정확한 함수가 주어진 것이 아닌 이상 어떻게 점을 정확히 찍겠어요. “그냥 아는 정도만 갖고 대충 그리렴.”하면 또 못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주어진 것의 특징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캐리커쳐 같은 거죠. 근데 학생들은 캐리커쳐가 아니라 사실화를 그리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릴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차함수를 그릴 경우, 아래로 볼록이나 위로 볼록된 개형을 그리면 그만입니다. 그런 다음, 그 상황에 맞춰, x축이 중요하면 x축을 그리면 되고, 축은 필요없고 어떤 비스듬히 올라가는 직선이 필요하면 그 직선만 그리면 됩니다. 만약 경우가 여러 가지로 나뉘면 각각에 대한 그림을 그리면 되지요.

시각 정보에선 적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 쓸데없는 정보로 정보 전체를 쓸모없게 만들지 마세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기다려 주는 것이다

 

학생과 마주치는 시간이 많은 학부모는 특히나 이 부분에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습자에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수학처럼 추상적인 공부는 생각의 양과 질에 따라 학습의 질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조급증은 자녀의 이러한 시간 투자를 불가능하도록 만듭니다.

아무리 빠르게 진도를 나가면 뭐합니까, 아무리 많은 문제집을 다 풀면 뭐합니까, 결국 구멍 숭숭난 스펀지 신세일 뿐인데요. 이렇게 시키는 이유가 불안해서이고, 하고 나면 그래도 안도감이 들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또한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도 압니다. 그러나 둘 다 거짓입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얻은 심리적 안도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일 뿐입니다.

요즘처럼 심한 경쟁시대에 학생을 기다려 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학교는 학교대로, 학원이나 강사는 그들대로, 학생의 결과가 그들의 결과로 직결되는 현실 때문에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나서서 자녀를 몰아치면, 자녀는 기댈 언덕이 없습니다.

 

덧붙임. 여기 있는 정보는 수학 실력 향상을 위한 정보이지, 시험 기술을 위한 정보가 아닙니다. 종종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에 시험 기술을 위한 훈련을 하거나 혹은 거꾸로 된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시험 기술에 대한 정보는 가능한 빼버렸습니다.

또한 여기 있는 정보는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되나 통계적 이상치에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론

수학 공부에 대한 몇가지 조언”에 대한 3개의 생각

  1. 이 블로그에 실린 모든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아쉽네요.

    게시자: 눈사람 | 2014/08/12, 10:13 오후
  2. 와! 정말 재밌습니다! 새글이 올라오지않는다는건 슬프죠

    게시자: 익명 | 2015/12/19, 2: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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